VR은 익숙하면서 새로운 것

"사람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원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시장에서 원하는 것도 익숙함입니다. 하지만 개발사가 익숙함에 안주하게 되면 이미 때는 늦습니다.VR(가상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토이랩 박종하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위메이드 재직 시절 주변으로부터 너무 빨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가 2011년 카카오에 게임센터 사업모델과 오픈 API/SDK 기술모델을 제안할 때만 해도 그 파급력에 대해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저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앞서 나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1년 간 카카오를 설득한 끝에 2012년 7월 '카카오게임하기'가 문을 연다. 그리고 카카오는 국내는 물론 글로벌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박 대표는 '카카오게임하기'가 막 오픈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왜?라는 의문이 많았다고 했다. 익숙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너무 새로운 것이어서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없었다. 그가 말하는 새로움이란 기존의 익숙함들이 결합돼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카피'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결합'이다. 그는 "백미러를 보면서 운전하는 느낌이 싫었다"고 말한다.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의 본질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익숙한 새로움을 찾아내는 것, 제가 VR게임에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 

◆ VR게임은 '익숙한 새로움' 

박 대표는 2015년 7월 1일 이토이랩을 설립했다. 위메이드를 떠난 직후의 일이다. 설립 초기 약 30여개의 아이템을 놓고 내부 논의를 거듭했다. 게임성과 현실성을 동시에 따져야 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포커게임'과 'VR'이었다. '포커' 중에서도 '홀덤'은 100년 이상의 검증된 게임성을 자랑했다. 박 대표 스스로 확신에 이르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정통성 있는 포커대회의 '룰'만 가져올 수 있다면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글로벌 시장에서 포커게임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 대표는 그 해 10월 '엘리스포커 닷컴'을 오픈했다. 후발주자로서 그의 선택은 멀티 플랫폼 전략이었다. PC와 모바일, 그리고 VR로 포커게임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작년까지도 VR은 생소한 분야였다. 박 대표가 '익숙한 새로움'을 몰랐다면 VR은 선택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VR게임은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과는 달랐다. 일단 개발에 필요한 주변기기부터 신경써야 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관련 법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모든 것을 일일이 직접 조사하고 터득해야 했다. 

"BTB 모델의 VR게임인 '상륙작전 VR'을 'VR플러스'에 납품할 예정입니다. 'VR플러스'는 서울, 부산, 울산, 대구 등 일부 지역에 위치한 실내형 테마파크인데 이와 관련한 명확한 법규가 없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상륙작전 VR'은 모션디바이스와 협력해 개발한 의자 형태의 체감형 기기다. 총을 쏘는 대신 앉아서 레이싱을 즐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체감형 기기의 경우 도심형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중소 규모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VR방 등 도심보다 지방에서 수요가 늘고 있다. 체감형 기기의 확산으로 기존 대형 테마파크도 변화를 맞고 있다. 

"기존 아케이드게임기와 체감형 기기의 차이는 'VR 스크린'과 함께 온라인으로 업데이트 가능한 플랫폼이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드웨어 납품을 통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모바일과 연동할 수 있다는 점도 멀티 플랫폼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 체감형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VR의 핵심은 멀티 플랫폼 전략 

이토이랩은 다음 스텝으로 모바일 VR게임으로 나아갔다. 이번엔 BTC 모델이었다. 디펜스게임 장르로 개발된 '좀비 버스터'는 전후좌우 몰려오는 귀여운(?) 좀비를 처치하는 VR 슈팅게임이다. 

이번에도 멀티 플랫폼 전략이 힘을 발휘했다. 콘솔과 PC 유저들을 타깃으로 한 이 게임은 내년 1월 HTC '바이브'로 스팀 스토어에 출시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지난 여름 북미 게임쇼 'E3'에서 VR게임으로 전세계 바이어들을 만났다. 그리고 VR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확인했다. 특히 중국 기업들의 관심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는 중국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VR 분야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VR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부동산법에 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인구 밀집도에 따라 부지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인데, 도심형 실내 테마파크는 유동인구와 패밀리 형태의 체류시간을 높이는 유력한 방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실제로 중국의 백화점이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화 중이라고 했다. 콘텐츠로 채워지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인구 트래픽이 오르고, 따라서 부동산 가격도 올라간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중국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이 모바일 환경에서 아이폰과 갤럭시에 이어 스토어 게임도 벤치마킹했지만, 다음 플랫폼인 VR에 대해서는 앞서 나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국내에도 VR 생태계를 위한 업체 간 협업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소셜 기반의 플랫폼이 VR 플랫폼에 강력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AR(증강현실) 기술도 마찬가지다. 기술적인 차이일 뿐 넓은 의미에서 AR도 VR과 같은 가상현실 기술이다. 

"여전히 VR은 아직 이르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대로 된 VR게임이 나오기엔 시기상조라는 얘기죠. 하지만 하드웨어의 발전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2009년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VR기기의 성능은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VR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최진승 기자 choijin@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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